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작교 작전 (문단 편집) === 각 사단별 담당지역 평정작전 === 첫 시작은 3월 8일부터 백마사단 [[제28보병여단|28연대]]가 백마사단의 취약 후방지역에서의 소탕작전을 시작으로 3월 15일에 수도사단에서 5개 대대의 병력을 연대마다 차출하여 송꺼우 남단 3km에서부터 대규모 소탕작전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특히 수도사단은 그동안의 연합군이 잘 쓰지 않았던 한번 작전지역에서 거의 작전을 하지 않는 점을 VC들이 악용한다는걸 파악하고 있었고 그때문에 반전(反轉) 작전을 수행했다. 즉 한번 소탕했던 지역에서 다시 작전을 수행했다는 의미이다. 덕분에 초기에 한국군의 작전에 대응을 회피했던 VC들이 수도사단의 반전(反轉) 작전에 큰 피해를 입었다. 3월 17일에 백마사단은 1번 국도로 계속 북진하면서 투이호아와 밀접한 1번국도 외곽의 서쪽과 북쪽에서 북진의 기반과 수도사단과의 연계를 위한 소탕작전을 시행했다. 하지만 그 마무리를 하고 있을때 일명 '''도깨비 11중대 습격 사건'''이 터졌다. 4월 10일 28연대 3대대 11중대가 작전을 마치고 복귀하여 기지에서 쉬고 있었을때 병장급 초소근무자가 리시버를 꽂고 잠을 청하는 바람에 VC들이 초기 침투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영내에 적이 침투하여 내무반(생활관)에 소련제 방망이 슈류탄이 투척되어서 아군 12명이 전사하고 22명이 부상을 입은 작전중 두번째의 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전과 사살 43명 생포 2명) 수도-백마사단 각각 연결작전이 시작되는 4월 18일까지 예상보다 빠른 작전수행을 보이며 각각의 연결작전에 들어갔고 수도사단은 608명 사살 272명 생포의 전과와 아군 16명 전사 80명의 부상의 피해와 백마사단은 265명 사살 145명 생포에 아군 19명 전사 57명 부상의 피해와 전과를 각각 기록했다. 4월 18일까지 백마사단의 피해를 제외하면 한국군의 작전상황에서의 피해는 최소화된 상태였고 평정작전의 성과도 매우 좋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